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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캐논코리아·삼화전기 ‘직접고용 악용’에도 문제없다는 파견법

캐논코리아·삼화전기 ‘직접고용 악용’에도 문제없다는 파견법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불법파견을 일삼는 기업들이 모호한 법 조항을 악용합니다.”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옛 롯데캐논) 사내하청업체 유천산업 직원들의 정규직 투쟁을 돕고 있는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문상흠 노무사는 이렇게 말했다. 문 노무사가 지목한 법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제6조의2 고용의무 조항이다. 이 조항은 2007년에 ‘사업주가 2년을 초과해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사업주는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로 개정됐다. 

 

과거 조항(간주조항)으로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시정지시를 받은 기업은 파견근로자들을 정규직과 똑같이 대우해야 하지만, 개정된 조항(의무조항)에서는 ‘직접 고용’만 하면 된다. 직접 고용의 형태는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상관없다. 정규직 계약을 하더라도 기업이 근로조건을 조정해 불법파견 때보다 열악한 대우를 할 수 있다. 

지난 2월 불법파견이 적발된 캐논코리아와 삼화전기는 이 조항을 이용해 노동자들과 협상했다. 2월21일 노동부 안산지청은 “캐논코리아가 불법파견을 했다”면서 “유천산업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지시했다. 한 달간 침묵하던 캐논코리아는 지난달 20일 ‘캐논코리아 자회사 정규직 채용’과 ‘캐논코리아 1년 계약직 채용’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통보했다. 

직원들이 반발하자 캐논코리아는 지난달 28일 돌연 이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공고했다.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는 했지만 근로조건은 불법파견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유천산업 직원들의 근속연수를 무시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라고 요구하고 퇴직금 지급도 거부한 것이다.

 

유천산업 직원들은 평균 근속연수가 7년이 넘는다. 이들 중에는 16년을 근무한 직원도 있지만 모두 캐논코리아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야 하는 것이다.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55세 이상 직원의 경우 신입사원 수준의 월급을 받다가 매년 10%씩 삭감돼 58세가 되면 최저임금 수준이 된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파견법은 고용형태나 근로조건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며 “직접 고용만 맞다면 근로조건은 노사협의로 결정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법 조항에만 맞으면 된다는 식이다. 파견근로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기업에 의해 악용되는 것을 정부가 막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유천산업 직원들은 근로조건은 추후 항의하기로 하고 캐논코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천산업 직원들은 “손가락이 휘어가며 10여년 일했지만 불법파견에 대해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억울하지만 법이 이렇고 우리는 대기업과 싸울 힘이 없다”고 말했다.


삼화전기도 비슷한 경우다. 지난 2월28일 노동부 청주지청은 삼화전기가 하청업체 직원 37명을 불법파견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삼화전기는 12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나머지 25명은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연봉제 직원으로 고용했다. 이 과정에서 17년을 근무한 직원에게도 신입 수습기간 3개월을 적용하고 10% 삭감된 월급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견법에도 근로조건을 다룬 조항은 있다. 파견법 6조의2 3항에는 ‘파견근로자와 동종 또는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으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을 따르고 없으면 기존 조건 수준보다 저하돼선 안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청주노동인권센터 오진숙 변호사는 “불법파견 노동자와 동종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를 찾기가 쉽지 않고 노동부도 근로조건을 합의의 문제로만 본다”며 “사실상 이 조항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111619001&code=940301#csidx3776c8b0e5e7388a02f08da447a2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