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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칼럼] 오늘도 도급을 타고 있을 000 님!

 

 

오늘도 도급을 타고 있을 000 님!

당신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당신의 황당함과 분노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아래더군요. 친구나 마찬가지죠.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순진해보였습니다.  솔직히 답답해 보였어요.  그리고 당신의 해고 사건을 맡는 것이 조금은 내키지 않았지요.  노동조합 위원장한테 억지로 끌려온 것 같아서요.

그런데 노조 위원장이 억지로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더군요.  당신이 그랬다지요.  사장 손을 좀 볼 거라고요.  그걸 막기 위해서 법적으로라도 구제 방법을 찾자고 데리고 왔더군요.  나중에 들었지만요.


사장 손을 본다는 것이 뭔지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내력을 얼핏 들었어요.  어떤 질이 안 좋은 사람의 몸을 못 쓰게 만들고서 적지 않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고요.  손을 본다는 말, 그것이 눈을 하나 못쓰게 만들거나 아킬레스 건 하나를 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내가 보아도 사장은 뻔뻔스럽기 한량없는 생 양아치였고 그 사장을 상대하기에 당신은 너무 착하고 순진했습니다.  당신의 한참 늦은 첫 직장이 하필이면 월급 한 푼 정해지지 않은 택시 도급제 기사였다니요.  하루에 12시간을 오로지 사장에게 바치는 사납금과 가스비를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그 시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몫을 벌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택시 도급제라지요.

법으로 금지된 도급 기사로 들어가 석 달 동안 단 한 번도 사납금을 밀려본 적이 없는 당신은 사장이 보기에도 노다지였을 겁니다.  그런 노다지가 자칫하면 노동조합 조합원이 되어 고정 월급이라도 얼마간 받게 되니 욕심이 배 밖으로 나온 젊은 사장 놈의 심사가 얼마나 꼬였을까요?

정식 발령을 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어떻게든 내보낼 궁리를 찾아야지요.  그 사장, 나도 겪었지만 비열함과 뻔뻔함이 온 몸에 진드기처럼 다닥다닥 붙었습디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면허 취소 경력이라고요.

처음 당신이 사장과 면접을 볼 때, 심지어 당신을 면접에 데리고 간 직장 선배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과거 면허가 취소되었다가 다시 발급받은 경력을 서로 확인하면서 사장이 “내일부터 근무하시라” 했던 건데 석 달이 지나 면허 취소 경력이 새로 발견되었다고 그만두라고 하니 당신과 또 당신의 선배는 참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습니까?

사람 같아 보이지가 않았겠지요.  차키를 반납하라고 하여 차를 회사에 갖다놓고는 사장을 손을 볼지를 고민 중인 당신에게 노조 위원장이 무던히도 설득을 했다는군요.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 젊은 사장 자기가 해고시킨 노조위원장에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신지라 오래 쉴 형편이 못 되어 임시로 다른 택시 회사 도급을 타면서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접수했지요.  그런데 새로 다니는 그 택시 회사를 어떻게 알고 거기다 내용증명까지 보내서는 해고한 적이 없으니 빨리 와서 일을 하라고 했지요.  그 사장을 보면 영악스러움과 뻔뻔함도 진화를 거듭하는구나 생각이 절로 듭니다.

더 구구절절이 얘기는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노동위원회는 당신이 근무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각하’ 판정을 내렸어요.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당신은 그 선한 눈을 그렁그렁하면서 또 정말 고맙다면서 내 손을 꼭 붙잡았지요.  솔직히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여전히 어눌한 말 한 마디가 각인처럼 찍혀서 지워지질 않아요.

“아버님 얼마 못 사시는데, 아버님 모시고 나서 사장 손을 볼 겁니다.”

다른 얘기는 않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양아치 같은 사장 손을 보는 날엔 나는 정말 괴로울 겁니다.  그리고 당신을 설득해 나에게 데리고 온 노조위원장도 그 성격에 평안한 삶을 못 살 거예요.  늦은 나이에 인연을 맺은 첫 직장이 당신에게 한 짓거리가 쉽게 잊히지 않겠지만 뒤돌아보지 마세요.

여전히 다른 회사에서 도급을 타고 있을 000 님!

모르긴 해도 당신은 거기서도 서류에 없는 유령 직원일 겁니다.  여전히 하루 12시간은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이 비로소 당신의 것이겠지요.  내 눈에는 한없이 부당해보이지만 그런 정신없는 시간을 빌려서라도 당신이 빌어먹을 경험으로부터 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밥 한 끼 같이 먹으십시다.

 

 

등록일 :  2011년 7월 16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