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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칼럼] 외판원 하기 싫으면 나가라!

 

 

최 박사 왈 “외판원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거예요!”

 


밤에 노동위원회에 제출할 서면을 쓰고 있는데 최 박사가 낙지에 소주 한 병 사들고 왔다.

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같이 들 한 잔 걸쳤단다.  꼼지락거리는 낙지를 입에 넣으면서 이야기한다.  “내가 가수, 딴따라, 보험외판원이 될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거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거예요”

가수, 딴따라, 보험외판원을 폄하하는 말 같아 불편하긴 했지만 저간의 속사정을 잘  아는 터라 가만히 듣고만 있다.  최 박사, 아니 최승호 씨는 해고자다. 

충북발전연구원이라고 있다.  충북도에서 지역 정책개발 연구를 해달라고 설립했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20년이 넘는 동안 해고라는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 최승호 씨를 포함해서 3명이 해고된 거다.

연구원에는 19명의 연구위원이 있다.  말이 정규직인데 2년 계약기간에다 평가결과가 안 좋으면 재임용을 안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그걸 적용해서 재임용을 안 한 경우는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없었다.  그걸 적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연구원이니까 연구과제가 연구위원별로 배정된다.  그것을 공정하게 관리하라고 만든 부서가 과제관리위원회다.  그 과제관리위원회에서 전공 분야별로 연구 과제를 연구위원들에게 배정하는 거다.  그렇게 배정된 연구결과를 평가해서 평가점수를 매기는데 그 평가점수가 개인 별 성과급으로도 반영되고 재임용에도 반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게 있다.  평가 점수가 높은 사람은 늘 따로 있고 평가 점수가 낮은 사람도 늘 따로 있다.  누구냐고?  연구원 내에서 보직을 갖고 있는 박사들, 청주 지역의 대학을 나온 박사들, 충북도청과 선후배 지간인 박사들, 이 박사님들은 최상위 클래스다.  평가 점수 1등에서 5등까지는 독차지한다.

또 이런 박사들이 있다.  보직이 없는 박사들, 다른 지역의 대학을 나온 박사들, 충북도청에 선후배들이 없는 박사들, 거기다 연구만 열심히 하는 박사들!  이 박사님들은 어김없이 평가 점수 꼴찌다.

최승호 박사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독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직이 없다.  도청에 선후배들이 없다.  게다가 자칭 딴따라 기질이 없다.  그런데 그게 평가 점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관계가 아주 깊다.  충북발전연구원은 그렇다.  과제관리위원회는 허울뿐이고 연구과제는 특정인들이 도맡아간다.  전공도 가리지 않는다.  대개가 지역 연고, 대학 선후배, 보직을 이용해 도청 공무원들과 친분을 트고 도청에서 발주하는 연구 과제를 싹쓸이해가는 것이다.

한 연구위원의 말이다.  “자기 전공이 아님에도 하이에나처럼 뜯어간다는 거죠. 사람들이.  애시 당초 내정을 해서 연구 과제를 가져오니까 그걸 무슨 수로 당하겠습니까?”

최승호 씨는 사회복지 정책 전문가다.  그런데 최승호 씨가 맡아야 적절한 연구과제도 전혀 전공 분야가 다른 산업경제, 경영, 공학 분야 전공자들이 가져갔다.  심지어는 최승호 씨가 도청에 제안을 해서 정책과제로 내려 받은 사회적 기업 분야 연구과제도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

과제관리위원회는 허울뿐이다. 골고루 전공에 따라 과제가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전공 가리지 않고 특정인들이 몰아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제 수행 건수를 가지고 평가 점수를 매기니 이건 자전거와 에쿠스를 나누어주고는 결승점까지 누가 빨리 가는지 평가하는 꼴이 아닌가?

이런 비정상적인 과제 배분 구조를 방치하여 두었기 때문에 평가결과 불량이라는 이유로 재임용되지 않은 사례가 없었던 것이다.  20년 동안 말이다.

그런데 도지사가 바뀌고 덩달아서 원장이 바뀌더니 신임 원장님 하는 말이 충북발전연구원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단다.  그래서 평가결과 하위 3회 연속이면 원장이 직권으로 해고를 시키도록 규정을 신설하고, 거기다 2011년 10월에 계약기간 만료가 찾아온 연구위원들을 평가결과가 안 좋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연구과제의 배분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특정인들이 독차지해간다.  과제관리위원회는 여전히 허울뿐이다.  방송국과 인터뷰를 하는 원장의 말은 더욱 가관이다.

“연구 많이 따가는 것도 능력 아닌가요?”  하지만 규정 어디를 보아도 연구위원은 연구를 하도록 되어 있지 영업사원마냥 연구를 따와야 한다는 문구가 없다.

전공 분야가 아닌 사람들이 “하이에나”처럼 연구 과제를 독식해가니 표절 시비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심각한 표절이 적발되었으나 경고에 그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벌써 두 번 표절이 적발되었다.  그래도 몰아주기 분배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한다.

최승호 박사는 최근 2년 동안 학술재단 등재지에 3편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충북발전연구원에서는 요 근래 없었던 일이다.  동료 연구원 중 한 명은 최승호 박사를 사회복지정책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힐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충북발전연구원은 충북도청의 질 낮은 하청회사로 전락했다는 소리가 높다.  연구위원들은 전공에 맞게 공정하게 연구 과제를 배분받아 수행하지 못하고 도청 공무원과 연고를 쌓아서 일거리를 따와야 하는 영업사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평가결과 하위로 퇴출될 것이다.

충북발전연구원의 신임 원장은 소프트웨어(공정한 과제배분시스템)는 바꾸지 않고 하드웨어(평가결과에 따른 퇴출)를 바꾸려 한다.  무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원장의 소프트웨어가 한참 떨어지는 것 같다.

 

 

등록일 : 2011년 11월 8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