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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들의 '최저임금사용설명서'

청주노동인권센터 2015. 5. 19. 11:12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간행물 '비정규노동' 기고글입니다)

 

 

고용주들의 최저임금 사용설명서

 

조광복(음성노동인권센터 노무사)

 

1.

 

00 씨는 택시기사다. 17년을 운전대 앞에서 보냈다. 김 씨는 6부제 즉, 5일 근무 1일 휴무제로 일하고 있다. 김 씨가 회사에 납입해야 하는 1일 운송수입금은 13만원. 이 돈을 벌기 위해 12시간을 꼬박 일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3시간은 가스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수입을 가져가기 위해 일한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위배되지만 우리나라의 택시회사 90% 이상이 일정액의 운송수입금 납입을 강제하는 사납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김 씨의 1일 소정근로시간은 4시간이다. 원래 8시간이었던 것을 해마다 7시간 20, 6시간 40, 6시간, 5시간으로 줄이더니 이젠 4시간까지 줄였다. 반대로 사납금은 해마다 오른다. 그러므로 김 씨는 하루 12시간 일해 사납금을 입금하는 대신 근로의 대가인 고정임금은 4시간치를 받게 된다. 해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사업주는 고정급여가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줄이기 때문이다. 소정근로시간이 줄었다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나? 천만에. 택시기사들에게 소정근로시간이란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시간일 뿐이다. 나머지 시간 동안 사납금을 벌어야 한다.

 

2.

 

00 씨를 비롯해 4명의 여성들이 찾아왔다. 꽤 알려진 화장품 회사다. “11개월 동안 본사 소속이었어요. 그러다 한 달은 어디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다시 본사 소속이었다, 또 다른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3년 동안 세 번 바뀌었어요. 얼마 있다 퇴직하려고 퇴직금 어떻게 되냐 물었더니 하는 말이 1년이 안 돼 퇴직금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화장품 회사는 소속 노동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뺑뺑이 돌리듯 고용주를 바꿔 댄 것이다. 퇴직금과 연차휴가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런 꼼수 역시 최저임금과 무관하지 않다. 최저임금은 맞춰야 하겠고 다른 곳에서 돈을 쥐어짜내려다 보니 퇴직금과 연차수당을 아끼자고 노동자들의 소속을 마구잡이로 바꾸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상담이 의외로 많다. 아웃소싱 업체가 인력을 공급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거꾸로 제조업체가 아웃소싱업체에게 잠시 보관(!)하도록 자신이 고용하는 인력을 맡기기도 한다. 카드를 돌려 빚을 막듯이 고용주를 돌려 퇴직금을 막는다!

 

3.

 

00 반장은 며칠을 망설이다 취업규칙 동의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 회사는 중견기업인 제조업체의 한 라인을 맡아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원청회사는 일요일을 포함해 달력의 빨간 날 즉, 공휴일을 휴일로 지정해 쉰다. 하기휴가도 3일을 준다. 협력업체인 이 회사 역시 이날은 따라 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사는 새로 만든 취업규칙을 갖고 와서 이 규칙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라고 요구하는데 거기에는 국경일, 공휴일은 연차휴가로 갈음하여 휴무한다. 하계휴가 3일을 부여하되 연차휴가로 갈음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그러니까 원청회사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날을 전부 연차휴가로 소진시키겠다는 내용이다. 직원들이 사인을 안 하니 반장을 압박하는 것이다. 이 회사의 임금 역시 최저임금이거나 경력자의 경우 약간을 웃도는 실정이다.

 

4.

 

요양보호사 문제는 너도나도 써먹어서 식상하기조차 하다. 많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들은 24시간 격일근무 또는 12시간 주야 교대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보통 요양보호사 한 명이 5명에서 10명 많게는 20명의 환자를 보살핀다. 며느리 한 명이 시아버지 시어머니 10명을 수발하는 것과 같다. 이들의 근로계약서를 보면 휴게시간 23시부터 다음날 05시까지이렇게 써 놓은 경우들이 많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야간 시간 중 상당 부분을 휴게시간으로 잡아놓는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들은 야간에도 병실을 떠나지 못하고 석션(가래를 뽑아주는 일)을 하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욕창이 번지지 않게 환자들의 자세를 잡아주거나, 편마비 환자들의 대소변을 돕거나 혹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치매 환자들을 다독거려야 한다. 그 시간에 쿨쿨 골아 떨어져 자다 환자가 낙상사고라도 난다면? 그 요양보호사는 짐을 싸던지 아니면 큰 곤욕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병실을 떠나지 못한 채 환자들을 수시로 돌봐야 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인가 휴게시간인가? 많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이 시간에 대해 휴게시간이라면서 임금을 주지 않는다. 요양보호사들의 임금 역시 대개 최저임금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에 맞춰져 있다.

 

5.

 

00 . 3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요즘 사장한테서 시달림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기본급 300%의 상여금이 있다. 그러다 2014년도 최저임금이 오르자 그 해 1월에 상여금 300% 100%를 기본급, 연장수당에 일방적으로 포함시켜서 결국 기본임금은 올랐지만 실제 받는 임금 총액은 도루묵이 돼버렸다. 김 씨는 일방적으로 상여금을 여기저기 분산 편입시킨 것과 그 동안 통상임금에 넣어야 할 수당을 제외시켜 연장수당을 계산한 것 때문에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하였는데 그 후부터 매일같이 시달림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장은 닦달을 한다. “너 회사 말아먹으려고 들어왔지?” “물 버리지 말고 빨리 나가.” “노동부에서 인정을 해도 줄 수 없어. 대법원까지 몇 년이고 가보자!”

얼마 전 김 씨만 빼고 이 회사의 노동자들 전부가 사장이 제시하는 취업규칙 변경 안에 서명했다. 변경된 취업규칙은 상여금을 200% 지급할 수 있다. 상여금, 교통보조비는 월 15일 이상 근무한 사원과 지급 당시 재직 중인 사원에게만 지급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상여금과 교통보조비를 통상임금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꼼수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그리고 중소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거나 보호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김 씨는 실감하고 있다.

 

6.

 

최저임금은 생활 속의 일부가 되었다. 식당 주인도, 그 식당의 종업원도 최저임금이 얼마다 하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하다못해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자신의 최저임금을 쉽게 알 수 있다. 거기다 최저임금은 강제된 임금이다. 사업주는 직종 불문하고 2015년 기준으로 시간 당 5,580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작 최저임금이나 그 언저리를 받아왔던 노동자라면 최저임금이 오를 때 덩달아서 실제 지급받는 임금총액 또한 올려 받아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참 이상하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많은 노동자들의 총액 임금은 그대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고용주들이 총액 임금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근로시간, 휴게, 휴일, 휴가, 퇴직금, 고용안정 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모든 조건들을 쥐어짜내는 데에 있다. 그래서 겉으론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했지만 전체 근로조건은 그대로이거나 되레 후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당연하게도 무노조(혹은 유명무실한 노조) 사업장, 중소영세사업장, 간접고용 등의 비정규직 고용 사업장들에서 자주 발생한다. 그나마 미흡하기 짝이 없는 최저임금의 취지가 형해화, 껍데기만 남게 된 것이다. 이들 사업장에서 근로조건의 결정은 사실상 사용자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상 사용자의 처분에 맡겨져 있는 현실에 개입하지 않고선 최저임금은 반쪽짜리 기능만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현실에 개입할 것인가? 이 문제는 새로운 과제로 남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