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대동여지도
파견 노동자 연극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맺어준 인연! 5월 13일 포근한 인상이 매력적인 김태일 회원을 만났습니다. 괜히 일하는데 방해가 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장님께서 인터뷰 시간도 빼주시고 사장실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주셨답니다. 늘 사업주와 노동자가 대치되는 상황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낯설면서도 참 좋아보였습니다. / 청주노동인권센터
# 어떤 일을 하시는지?
건설에는 두 가지 일이 있어요. 건물을 짓는 건축 설계와 도로, 하천, 다리 등을 설계하는 토목 설계가 있죠. 저는 토목설계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측량과 전반적인 설계를 맡고 있어요. 토목설계는 안전, 구조적 결함이 없도록 설계를 하는게 중요해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신경쓰며 일하고 있어요.
# 설계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구두 수선업을 하셨어요. 어릴적부터 녹록치 않은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뭔가 타파하고 싶었죠. 그래서 고등학생때 돈을 많이 벌고, 활동적인 일로 생각해 낸 게 건축 일이었어요. 정치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때 제2의 정부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2의 정부가 들어설만한 지역의 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또 충북은 우리나라의 한 가운데니까 돈이 많이 돌고 경기가 활성화 될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충북대학교 토목공학과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토목공학과에서도 분야가 다양한데 3학년 측량수업에서 호주에서 광활한 대지를 측량하고 비행기, 드론을 이용해서 측량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보다 측량의 영역이 넓고 새로운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설계, 측량일을 하게 됐어요.
# 지금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많은 분들이 토목을 정치와 연결 짓고, 또 환경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환경을 파괴할 수 밖에 없는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불편함을 개선하는게 토목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이야 서울, 부산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철도가 놓이기 전에는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 외에도 비포장도로를 정비해서 사람들이 갈수 없었던 곳에 길을 내주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공공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자신에게 토목일이란?
제가 원했던 꿈을 이룬 거죠. 어릴때 놀거리가 없으니까 종이를 들고 동네를 직접 걸어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초등학생때였던거 같은데 위인전기를 좋았해서 많이 읽었었거든요. 그때 한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읽고 끓어오르는 마음에 안동의 지도를 그려보겠다고 다짐했었거든요. 그때 했던 그 놀이, 그 꿈을 지금 하고 있어서 참 즐거워요.
# 자신의 삶에 고민도 많고, 책임감도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계기가 있나?
아마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저희 증조 할아버지께서 장애인, 전쟁고아 같이 피치 못하게 떠도는 분들을 자립하도록 돕는 자선단체 자활원을 운영하셨거든요. 증조할아버지께서 그분들과 함께 생활하며 구두 닦는 일을 가르치고, 일하고 받은 돈 중 일부를 모아서 자활원생들 생활용품을 사고, 자활원생들이 훗날 독립할 수 있게 저축도 해주셨어요.
저희 아버지가 구두 수선업을 하신다고했는데 원래는 선생님이셨어요. 자활원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안좋아지니까 아직 독립 못한 22명의 자활원생이 걱정되셨나봐요. 아버지를 부르시더니 자활원생을 독립할때까지 맡아달라고 부탁하셨죠. 아버지가 효심도 깊고 책임감도 강했던분이라 교직을 버리시고 자활원을 맡아 자활원생들하고 구두를 닦기 시작하셨어요. 그렇게 30년을 닦으셨죠. 지금은 자활원생들이 모두 결혼하고 독립해서 나갔지만 여전히 구두를 닦으세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금전적으로 유복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얻었어요. 그래서 또래에 비해 늘 의젓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그런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트이고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생각, 고민이 많아진 것 같아요.
# 요즘 새롭게 관심 가는 것이 있나?
마음 속으로 관심 가는 분야는 사회적인 쪽이예요. 여자친구 덕분이기도 한데요. 여자친구가 시민단체에서 일하거든요. 그래서 청주노동인권센터에서 했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연극도 보러 갈 수 있었죠. 사실 전 세상에 불만 없이 잘 살았어요. 그런데 그 연극을 보면서 불공평하게 대우받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많이 가진 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곳에 후원을 하고, 기회가 된다면 그 활동에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주노동인권센터랑 행동하는복지연합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뻗치는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끝>
인터뷰·정리 / 김현이, 김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