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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는 차별화되어 이윤으로 쌓인다

청주노동인권센터 2015. 10. 12. 17:25

인간 사회에서 노동이 사라진다는 것을 가정할 수는 없다. 노동이 곧 생산 활동이자 먹이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의 노동은 자신의 것으로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거래가 된다. 여기서 거래되는 노동은 쓸모의 정도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데 이 가격은 시장의 가격으로 또는 수요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서 결정된다. 농산물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그 가격이 결정되고 이것이 곧 농업노동의 가치가 된다. 그런데 농업노동의 가치는 국가에 의해(수입농산물)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들에게 저가의 농산물을 공급해야 만 임금인상 요구가 억제되기 때문인데 개별기업을 대신해서 국가(총자본)가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 결과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은 도시 노동자들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노동에 대한 최저 가치는 국가에 의해서 정해지며(최저임금위원회) 최고 가치는 수요자인 기업주들에 의해서 정해진다. 그리고 온갖 방법에 의해 차별화 된다. 


여성은 왜 남성에 비해서 대체적으로 적은 일당을 받아야 하는가? 대부분 “남성의 노동이 질적으로 우세하다”라고 할 것이다. 이는 남성이 투박한 노동에 적합하고 여성은 섬세한 노동에 적합하다는 신체적 조건을 외면한 오직 성차별적 논리에 불과하고 남존여비라는 봉건사상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기업으로 옮아 왔다.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 남성과 여성의 호봉테이블이 다르다. 여성이 낮게 책정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가 전부다. 식당서빙, 건물 청소, 수도검침, 간병. 모두 무척 힘든 일들이자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다. 반면 임금은 형편없이 낮은데 사실은 남성이 기피하는 일이기에 그 가치는 더 높아야 함에도 현실은 거꾸로 돼있다. 여성들이 하는 일로 그 노동의 그 가치가 별게 없다(누구나 할 수 있는 허드렛일 이라)는 사회적 풍토 때문일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정도가 비정규직인데 이들의 월 평균임금이 185만원이다. 잔업 특근 야근으로 찌든 노동의 결과물이고 보면 겁나는 임금이다. 


현대차에서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은 왜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노동의 가치가 노동의 ‘양’과 ‘질’에 의해서 결정된 게 아니라 현대차자본의 수탈을 위해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의 비정규직은 어떻게 양산되었을까? 국가기관의 부채는 예나 지금이나 늘 문제가 된다. 국가가 공무원조직의의 총인건비를 줄이는 방법은 간접고용(외부화)을 하는 것이다. 국가기관에서의 비정규직(학교비정규직 공공기관비정규직 위탁 용역업체 등)은 이로 인해 양산된 것이다. 그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공무원조직은 총액인건비라는 테두리 안에서 끊임없는 대결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지금 공무원조직이 공공부문비정규직 노조를 혐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기업에서 대졸사원과 고졸사원간의 노동의 가치는 즉 임금차별은 어떻게 결정할까? 고졸사원의 노동이 임금차별만큼이나 그 가치가 낮다는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오직 학력으로만 결정되고 차별의 폭을 넓힐수록 기업주에겐 이득이지만 고졸사원의 입장과 동종업계의 상황이 고려되게 된다. 학력에 의한 임금차별이므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 모든 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야만 한다. 사교육의 광풍은 이러한 차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30대 기업에 710조원이나 쌓여 있는 사내 유보금은 온갖 차별과 중소영세업체에 대한 수탈의 결과물이다. 우리 ‘실업자’ ‘여성’ ‘비정규직’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의 그 노동의 가치가 대기업 곳간에서 신음하고 있다. 여기에다 9월 13일 노사정 야합이 이루어졌다. ‘직무성과형 임금체계’ ‘일반해고제’ ‘기간제 연장’ 등인데 이는 김대중정권의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노무현정권의 기간제법에 이은 3차 악법이라 할 수 있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란 명분아래 자행된 작금의 악법은 중장년층 정규직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다. 이는 중산층의 몰락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이자 20대 80의 사회로 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뜻한다. 

 

글쓴이 / 오현식 (청주노동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