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조합 합법화 및 현실화는 어떻게 가능했나
지난 8월 20일 서울고용노동지청의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조합에 대한 이주노조설립 필증 교부는 한국 이주노동운동사에서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는 이주노조 지도부와 조합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벌인 투쟁의 결과였으며, 앞으로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지원 활동과 이주노동자들의 당사자 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나는 이 글에서 그 투쟁의 과정을 돌아보고, 이주노조의 설립을 가능하게 한 그 조직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또한 앞으로의 이주노조 설립을 위한 성공요인들을 제시해 본다는 의미도 가진다.
2005년 4월24일, 서울경기인천 지역 이주노동자 100여명이 민주노총 앞에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주노조)의 출범을 알리며 “근로기준법조차 사문화된 현장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투쟁을 펼치겠다.”고 다짐한 이래, 지난 10년간의 이주노조 합법화 및 설립 투쟁은 법정과 거리를 오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주노조 설립신고반려 취소 소송은 지난 6월 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대법원은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한 단결권 등 노동3권의 주체가 되고, 이주노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노조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이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확정, 선고했다. 이는 2005년 이주노조가 설립된 후 10년 만에 합법노조 지위를 인정받게 된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대법원의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에도 불구하고 노조설립신고서를 두 차례 반려하면서 노조 설립을 실질적으로 방해하였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조에 대해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면서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등이 이주노조의 활동목적인데,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사유가 되므로 규약을 바꿔야 한다”는 사유를 들었다. 현실화를 고민해야 하는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의 보완 요구에 따라 지난 7월 19일 임시총회를 열고 한 차례 규약을 고쳐 제출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7월 23일 다시 규약을 보완하도록 요구했다. 보완을 요구한 이유는 “재적조합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 또는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과 ‘이주노동자 합법화’, ‘노동허가제 쟁취’라는 노조의 주목적이 정부의 노동정책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활동이므로 이를 고치라는 것이었다. 이주노조는 “대법원이 이미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과 관계 없이 노조활동을 할 수 있고 조합원 명부 제출을 요구하는 게 부당하다고 판결을 했는데, 노동부는 이를 뒤엎을 셈이냐”면서 “당연히 나와야할 노조설립 필증이 이렇게 지연되는 것 자체가 부당하고, 지난 10년간 싸워온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박탈하는 모든 억압과 차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주노조는 결국 고용노동부가 문제삼은 표현을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을 꾀한다”라고 바꾼 뒤에야 노조설립 필증을 교부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첫째, 이주노조 설립운동은 고용허가제 아래서 겪는 이주노동자들의 짧은 고용 기간과 불안정한 체류 지위로 인해서 그 지속성과 안정적인 조직화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고용허가제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간부 및 조합원들에 대한 끊임없는 표적 단속과 추방은 이주노조 설립과 조직화에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 문제는 이주노조와 이주인권운동 진영의 대정부 제도 투쟁으로 돌파해야 할 과제다.
둘째,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의 합법화 투쟁과 여타 지역의 이주노조 조직화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이주노조의 조직화는 전국 및 지역 민주노총 조직 및 이주인권 단체들과의 연대와 지원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이는 재정 및 법률 지원 그리고 노동 현장에서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상담 및 연대활동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셋째, 이주노조의 조직화는 또한 기존 상호부조적인 성격의 각나라 이주노동자 공동체와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이를 활성화하고 그 리더들을 이주노조의 간부로 양성하는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는 또한 이주노조의 대중화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채택할 수 있는 방향이다.
넷째, 고용허가제의 독소규정인 직장변경 횟수 제한, 임금 체불, 출입국 관련 체류 문제 등은 이주노동자들이 거의 상시적으로 부닥치고 잇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과 관련하여 이주 공동체 및 기존 이주노조 간부들의 적극적인 상담과 헌신적인 해결 노력은 이주노동자들을 노조에 가입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일상적인 상담과 투쟁은 이주노조 조직화의 핵심적인 모습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다섯째, 교육과 선전 활동은 이주노조 조직화에 있어 또한 중요한 수단이다. 최저임금, 연차에 대한 이해, 임금체불에 대처하는 방법, 산재 발생시 대응 방법, 노동조합의 필요성, 출입국관리법 등에 대한 교육은 각나라 공동체의 언어로 정기적으로 또는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사업장별로 또는 공동체별로 교육과 토론의 형식으로 다양하게 실행될 필요가 있다.
이주노조의 합법화와 설립 현실화는 앞으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이 이주노동자들의, 이주노동자들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당사자 운동이 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실현을 위해 할 일이 많다. 나는 충북에서의 이주노조 설립과 활성화를 그려보며, 오늘도 상담과 연대 활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글쓴이 / 이경(이주민노동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