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금센터는/알립니다

청주노동인권센터에 새식구가 늘었습니다.

2015.1.1 부터 센터에 함께 일하는 식구가 늘었습니다. 많이 많이 환영해주세요^^ 아래 글은 신임 사무국장이 쓴 글입니다. / 청주노동인권센터

 

 

 

 

센터의 신임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된 오현식 입니다. 양띠 해를 맞아 회원님들 모두 평안하시길 바라면서 인사 올립니다. 


저는 88년 올림픽이 있던 해에 럭키화학 지금의 LG화확에 입사하여 모노륨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2년 쯤 지났을 때 정문에서 경비와 직원이 싸우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는데 한 노동자는 출근하겠다는 것이었고 회사 경비는 이를 저지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이 분이 저에게 노조를 알게 해준 회사가 말하는 위장취업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열정은 파업전야라는 막걸리 집으로 이어졌고 저와 직장 동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나중에는 모임과 학습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92년 세상물정 모르고 설쳐대다 정직1개월을 당하고 보니 혈기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95년 1월 해고통보를 받았는데 해고를 당하고도 회사와는 격하게 싸우지 않았습니다. 해고를 제 스스로 원했던 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압력 앞에서 저항한번 못하고 영업부 인사발령에 순응하는 일들이 못내 아쉬웠고 이를 막아내자는 취지가 저로 하여금 해고를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96년 봄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노동조합 위원장 선출방식을 직접선거에서 간접선거(대의원)로 바꾸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조합원들이 술렁거리고 불만이 터지면서 급기야 ‘노조민주화추진회’가 결성되었는데 여기서의 첫 결정이 저를 데려오자는 거였답니다. 저희 집에 떼거지로 몰려왔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도 되지 않아서 슬리퍼 신은채로 도망치고 그 후로 3개월가량 도망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승리하였고 저는 97년10월부터 노동운동(전국민주화학연맹충북조직국장)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센터와는 2010년경부터 인연이 닿았습니다. 청주지역의 화학노조들이 인권센터의 법률자문을 받다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작년 여름부터 신변을 정리하고 시골살이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심신이 고달프기도 하고 제가 몸담았던 조직의 실체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다시금 인연이 닿아 인권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2월부턴 월요일의 주간회의를 함께하며 센터운영에 대해 조금씩 알았고요 금년 1월부터 출근하고 있습니다. 경험도 없는 제가 사무국장으로 내정 받으니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다 조광복노무사께서 음성지역을 담당하신다니 걱정이 더해지기만 합니다. 지금은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여기 저기 얼굴 알리고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조광복노무사님은 무척 바쁘답니다. 금왕에 사무실 구하랴 그 곳 토박이 활동가 만나랴 여기 저기 연락해서 사무집기 지원 부탁하랴 청주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에게 신임사무국장 소개시키랴, 금왕으로 출퇴근해야 하니 가경동 근처로 이사하랴 요즘 센타에서 제일 바쁜 분이 조광복 노무사님입니다. 금왕에 음성노동인권센타가 속히 안정되고 번창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저 또한 회원님들의 기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끝>

 

글쓴이 : 오현식 (청주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