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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존재의 존엄성과 삶을 찾는 적정 근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사성어에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정도를 지나침은 도리어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는 뜻의 과유불급(過猶不及)과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는 뜻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다가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근면’은 다다익선이 아니라 과유불급의 대상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근면’은 ‘부지런히 일하며 생활에 임한다’는 의미로 삶의 미덕이자 행동지침으로 자주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리고 ‘고생 끝에 즐겁고 좋은 일이 온다’라는 뜻의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근면을 북돋우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노동으로 존재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진 현실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답게 살려고 일을 하는데, 일을 할수록 더 비인간화되는, 즉 근면이 존재의 존엄성과 삶을 파괴하는 ‘근면의 역설’, ‘근면의 덫’ 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삶의 현주소를 나타내 주는 지표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부지런하게 일하여 세계 14대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삶의 의의와 질, 그리고 행복도 측면에서는 형편없음을 보여줍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는 1년에 평균 2,090시간을 일해 OECD 평균인 1,776시간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직장에만 매여 있어 일과 삶의 균형이 깨져, 일과 삶의 균형 항목에서 노르웨이는 10점 만점에 9.1점을 받았지만 우리나라는 5.4점을 받은데 그쳤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4월에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 현황’에서 ‘과로, 스트레스’와 연관성이 높은 뇌심질환 사망자가 전체 질병 사망자 중 41.5%를 차지하였습니다. 한병철과 김영선이 각각 지적했듯이 ‘피로 사회’ 와 ‘과로 사회’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연봉이 7,000~8,000만 원이 넘는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을 귀족 노동자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들에게서도 ‘근면의 덫’에 걸린 노동시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보게 됩니다.


현대차의 2012년 평균노동시간은 2,700시간으로 국내 제조업 평균노동시간 2,100시간보다 600시간이 많았습니다. 개월 수로 환산하면 4개 월을 더 일한 셈입니다. 그 정도의 연봉을 받으려면 잔업, 철야, 특근 등 살인적인 노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몸이 망가진다는 느낌이 드는데도 조금이라도 일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고, 자신이 돈버는 기계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국내 제조업 평균노동시간 2,100시간만으로도 OECD 국가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하고 자신의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2,700시간이나 노동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강수돌은 ‘열심히 일하며 좋은 날이 올 것을 기대하는 동경중독, 과잉소비를 즐기고자 하는 향유중독이 일중독을 부추긴다.’고 합니다.


버틀런드 러셀은 1932년 대공황 직후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이미 무조건적인 근면 숭배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러셀은 “일과 노동 그 자체가 신성하다는 신념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고, 이것은 많은 병폐를 가져온다. 이러한 신념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다 단지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를 더 중요하다고 믿도록 한다.”고 하면서 서구사회 전체에 퍼져있는 근면 숭배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강수돌의 ‘중독 사회’에 대한 성찰과 러셀의 ‘근면 숭배’에 대한 비판에는 더 많은 일을 하여 얻어낸 것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다가 존재의 존엄성과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는 현상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지나친 노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근면이 삶의 미덕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히말라야 기슭의 라마크 마을이나 남태평양 아누타 섬 사람들이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 삶의 시간을 온통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근면하려고 한다면 과유불급이 아니라 ‘적정 근면’이 되도록 하여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지나친 근면을 부추기는 사회시스템을 타파하고 적정 근면의 사회시스템을 만드는데 뜻을 모아 함께 실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끝>

글쓴이 : 홍성학(청주노동인권센터 운영위원이고, 충북보건과학대학교 산업경영과에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