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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미생> 시즌2에서 장그래는 파견노동자?

2014년 12월 29일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 대책(안)을 내놓았다. 부제는 비정규직 처우개선 및 노동시장 활력제고 방안. 그런데 이번 종합 대책이 충실히 이행된다면, 드라마 <미생>에서 기간제 노동자로 등장했던 주인공 장그래가 시즌2에서는 파견 노동자로 등장할 것 같다.

 

이번 종합 대책의 요지는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55세 이상 고령자에게 파견을 전면 허용하며, 정규직도 손쉽게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모두 다 문제지만, 아무래도 정부의 노림수는 파견 확대에 있는 듯하다. 파견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간접고용에 대해서 그동안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간접고용 구조에서 진짜 사장은 노동법 밖에 숨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처럼 편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러니 자본의 이해관계가 ‘외주노동시장의 합리화 유도’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종합대책에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때맞춰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들과 한국철도공사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다. 7년 여간 법정 공방을 이어온 KTX 여승무원들의 애타는 마음에 쐐기를 박는 판결이었다. 시간이 길어지면 지치는 쪽은 노동자다. 기업과 법원은 시간끌기 전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 계속 시간을 끌다가 대통령이 요구한 합의 시한을 앞두고 내린 판결이라니. 이는 자본과 정부의 공모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이번 종합대책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 제한(2년)을 2년의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고, 연장한 이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사용자는 이직수당을 주어야 한다. 또한 3개월 이상 기간제 노동자에게도 퇴직금을 준다고 한다. 조삼모사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기간제 노동자를 4년 동안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대가로 푼돈을 주겠다는 거다.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근로계약의 해지 기준과 절차를 명확하게 하겠다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하겠단다. 입법화하기는 어려우니 정부의 재량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규직을 겨냥하여 쉽게 해고시키겠다는 말이다. 부제의 의미를 이제서야 이해하겠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및 노동시장 활력제고 방안. 정규직을 쉽게 해고해야 노동시장 활력제고가 달성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안한 발명품인 생애주기가 이로써 완성된다. 청년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기간제 노동자로 전전하다가, 노년에는 파견 노동자로 삶을 마감하는 Life Cycle !!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인 기간제 노동자였다. 반면 그의 동료와 상사들은 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동료와 상사들은 장그래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런데 <미생> 시즌 2가 제작된다면, 누가 누구를 챙길 처지가 못 되는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될지 모른다. 정규직도 쉽게 해고될 수 있는 상시적 고용 불안 상태에 놓인다면 말이다.

 

어느덧 나이가 지긋해진 우리의 주인공 장그래는 이제 파견 노동자로 등장할 것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파견 노동자. <미생> 시즌2는 장그래가 진짜 사장을 찾아 헤매는 긴 여정을 다루는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글쓴이 :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