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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흉악한 세금

18세기 중반 이후 조선의 세금제도는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이라는 삼정(三政)체제로 확립되었다. 그런데 이 조세 수취제도는 제도 자체에 모순을 안고 있었는데, 모순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얼마를 수탈했느냐는 것이라기보다 누가 냈느냐는 것이었다. 이 시기 세금은 평민층, 즉 직접생산자인 자․소작농에게 집중적으로 부과되고 있었다. 토지세를 말하는 전정(田政)의 경우, 토지소유주인 지주가 아니라 지주에게 세를 물고 토지를 빌어 농사짓는 소작인에게 집중 부과되었다. 16세에서 60세까지의 양인 장정에게 부과된 군정(軍政)의 경우도 양반은 면제되었다. 환곡(還穀)의 경우 애초에는 춘궁기(보리고개)에 관곡(관아의 곡식)을 싸게 빌려주어 농민들이 굶주림을 면하도록 하는 빈민구제책이었다. 그러나 그 이자를 국가재정에 충당하면서부터는 국가고리대의 성격을 뗬는데, 이 역시 일반 농민들에 부담되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세금거두는 일을 담당한 수령과 아전은 중앙지배층과 결탁하여 자의적이고 무제한적인 수탈을 일삼아 농민들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처럼 삼정이라는 국가의 조세 수취제도는, 그 잘못된 구조와 파행적인 운영으로 직접생산자인 농민층의 성장을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생계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지금 사회 전체가 조세 때문에 시끄럽다. 거꾸로 가는 조세정책 ‘부자 감세’ ‘서민 증세’에 대한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 정책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기업의 법인세 3%로 깎아준 결과 2009년부터 5년간 기업들이 감면받은 세금이 37조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재원만 있으면 현재 논란이 많은 세금 문제를 잠재우고 늘어난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증세 없는 복지란 말장난으로 현실을 감추면서 이리 저리 돌려가며 ‘서민 증세’를 추진하니 국민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증세 여력이 있는 부분은 기업의 법인세와 대부자에 대한 직접세인 재산세, 그리고 고액 연봉의 직장인들밖에 없다. 그런데도 2013년 정부는 연봉 3450만원 이상 소득자 434만 명을 중산층으로 보고 연 16만원 정도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당시 서민의 소득세 규모가 2조원 늘어났고 기업체의 법인세는 2조원 감소해 4조원의 차이가 났다. 법인세는 낮은데 서민의 호주머니만 쥐어짜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초엔 연말정산 결과 월급쟁이들의 소득세가 처음으로 200만원을 돌파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월급쟁이 1630만명 중 소득세를 낸 1100만명은 22조3000억원의 소득세를 납부했는데 1인당 평균 201만원에 해당한다. 이는 한 해 전보다 12만1000원 늘어난 액수다.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연간 세수 증대가 2조 8000억원 정도 예상되면서 담배 단일 품목에서만 10조원 가까이 세금을 거둬들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담배와 술 도박 화석연료 등의 소비에 부과되는 이른바 죄악세 규모도 58조원에 달해 그동안 가장 비중이 컸던 부가가치세(55조7000억원)를 앞지를 전망이다. 특히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45조9000억원)나 소득에 따라 부과하는 소득세(45조8000억원)를 크게 웃돌고 있다. 죄악세의 기원은 16세기 교황 레오 10세 때 비롯됐다. 사치 생활로 빚에 쪼들리자 매춘업을 허가해주고 세금을 부과했다. 영국에선 1643년 청교도혁명 당시 자금 조달방안으로 맥주와 고기에 부과되는 세금을 올렸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턱수염을 깎지 않는 귀족들에게 턱수염세를 부과했다.


앞으로 주민세 자동차세도 대폭인상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세 가운데 간접세 비율이 52%에 달한다. 미국은 간접세 비율이 10% 내외다. OECD 평균도 20%대인 점을 고려하면 2배 이상 높다. 조세편의주의를 넘어 부자들을 위한 서민 등쳐먹기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쓴이 : 오현식 (청주노동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