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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역사교과서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국론분열이 심각하다. 대학교수, 교사 등 대다수 국민들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여당에서는 급기야 색깔론을 들고 나오고, 집필진도 인원이 57명이라는 것만 밝힐 뿐 명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민주국가라는 사회에서 정부 여당의 이런 행태가 정말로 가당키나 한 것인지. 

나라 전체가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는데, 이런 혼란 속에서는 문제의 본질, 즉 역사교과서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살피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역사교육의 가치와 이념 민주주의에


대한민국의 가장 큰 가치는 민주주의다. 국가는 국가나 어떤 특정계급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교과서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도, 바로 백성들의 자유와 권리가 역사상 어떻게 보장되고, 침해되고, 또 침해된 자유와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어떤 싸움을 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해 관념적, 추상적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배우고, 이것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 왕조시대에서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 아니라 왕이었고, 또 계급이 나뉘어 하층계급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이 일반 백성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의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런 불합리한 체제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어 왔는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교육의 기본적인 가치나 이념은 민주주의에 두어야 한다.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의 시작


그럼 우리나라에서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는 언제 생긴 것으로 봐야 할까.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라고 하는데, 그 대부분이 왕정이었고, 따라서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생각은 굉장히 혁명적인 것이다.

 이것은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1789년 시민들의 바스티유감옥 습격으로부터 시작된 프랑스혁명이라고 본다. 당시 프랑스 주변국들은 프랑스의 민주주의 혁명이념이 자신들 나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 왕 루이 16세를 지원하였고,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받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혔다. 1792년 9월, 혁명군은 발미(Valmy) 전투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연합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다음, 왕권을 폐지하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을 수립하고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위 발미전투에 대해, “여기서 그리고 이날부터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만큼 백성이 주인이 되는 공화정의 수립에 큰 역사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프랑스의 발미전투와 비슷한 가치를 갖는 사건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운동이라고 본다. 동학농민혁명은 집권세력의 부패, 일본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일어난 것이다.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농민반란이 주변으로 번져가면서 세력이 크게 늘고, 농민군이 전주까지 점령했는데, 이 때 청군과 일본군이 출동하자 정부가 폐정개혁을 약속하여 휴전을 하게 된다.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53군에 집강소라는 기관을 설치하여 폐정개혁에 착수하였는데, 이때 행하여진 개혁의 요강 가운데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것은 “노비문서는 불태워버린다, 토지는 평균으로 나누어 경작한다, 관리의 채용은 지역 문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 등이다. 이처럼 농민군이 신분철폐를 주장하고 또 스스로 집강소라는 자치기관을 두었다는 것은 민주주의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후 농민군은 일본을 배척한다는 “척왜(斥倭)”를 내걸고 다시 봉기하였지만, 정부군과 일본군의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여러 가지 조건에서 쉽지 않았겠지만, 농민군이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 때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공화정이 수립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본다.


국민의 힘으로 


동학농민군의 잔존세력은 이후 의병 등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는데, 김구선생도 동학농민군이었다. 이들 세력이 면면히 이어지다가 1919년 3․1 독립운동으로 다시 들고 일어났다. 3․1운동의 중요한 의미는 이것을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망명정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정치체제가 출현하였다. 왕정이나 대한제국의 복구가 아니라 민주정부 수립으로 된 것은 3․1운동에 나타난 국민의 힘의 반영이고, 또한 한국국민의 정치의식이 이미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임시정부를 바탕으로 항일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고, 우리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고 있는데, 우리 대한민국의 뿌리는 바로 3․1운동과 그것의 원동력이 되었던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의 정신은 우리 현대사 속에서도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등 독재에 맞선 투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지켜내는 원천적인 힘이 되고 있다. 

필자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위와 같이 우리 조상들이 독재와 외세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키워왔는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 오원근 (변호사)

※ 위 글은 오원근 운영위원이 2015. 11. 2. CJB 청주방송 굿모닝충북세종 ‘오원근의 시사펀치’에서 방송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