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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칼럼]왜 우리들의 사연은 항상 판박이인가? - 청주와 영동의 간병노동자들

 

 

왜 우리들의 사연은 항상 판박이인가? - 청주와 영동의 간병노동자들

 

 

 

 

 

 

 

청주와 영동은 같은 충북에 속한다. 그런데도 한 지역권이라는 느낌이 없다. 청주는 인구 70만 명에 육박하는 충북 도청 소재지다. 주변에 큰 산악지대가 없고 너른 평야가 있어 큰 마을이 서기 안성맞춤이다. 영동은 충북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 인구는 5만 명이고 민주지산, 석기봉, 각호산, 삼도봉 따위의 1,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쳐 있다.

20년 쯤 전인가 영동의 민주지산을 처음 갔을 때는 비포장 길이었다. 승용차에 얹혀서 갔는데 터덜터덜 멀미가 날 정도로 들어갔던 것 같다. 지금이야 청주에서 고속도로를 잡아타면 1시간 30분이면 영동에 도착하지만 여전히 청주와 영동은 거리로나 지역 정서로나 서로 통할 이유가 없는 남남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야기가 좀 에돌았다. 서로 닮을 이유가 전혀 없지만 아예 판박이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참이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과 영동군립노인전문병원 이야기다. 모두 시와 군이 노인복지를 위해서 시민과 군민의 세금으로 지은 병원이다. 청주시는 병원의 운영권을 효성병원을 운영하는 정산의료재단에 위탁했고 영동군은 영동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금강학원에 위탁했다.

이들 병원은 당연히 의사가 있고 간호사가 있다. 그리고 간병사 즉, 간병노동자들이 있다. 청주시노인병원에는 60명의 간병사들이 있다. 영동군노인병원에는 20여명의 간병사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요양보호사 자격을 갖고 있고 50대와 60대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24시간 격일 근무제로 일한다.(얼마 전에 시노인병원은 하루 12시간 교대근무로 변경했다) 모두 12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간병노동자들은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한다. 청주시노인병원의 간병사들은 한 명이 5명에서 8명의 환자를 돌본다. 영동군노인병원의 간병사들은 한 명이 12명의 환자를 돌본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모두가 노인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다. 중풍으로 전신이 마비되었거나 편마비를 앓고 있는 환자들, 거동은 할 수 있지만 치매가 있는 환자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며느리 하나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를 앓고 있는 5명에서 12명의 시아버지 혹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격이다.

그러니 그 일 많기가 오죽할까. 식사 돕기, 복약 돕기, 소변과 대변 돕기, 기저귀 갈아주기, 구강·두발·손발·회음부 씻어드리기, 세면/목욕 돕기, 옷 갈아입히기, 침상시트 갈기, 욕창 예방을 위해 체위를 바꾸어드리기, 침상이동 돕기, 휠체어 이동 돕기, 보행 돕기, 이송 돕기, 낙상/미끄러짐/넘어짐 예방하기, 응급처치, 감염과 욕창 예방하기, 가래 뽑아주기, 말벗해주기, 치매환자들 진정시켜드리기, 청소하기, 근무일지 기록하기....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넋이 나간다니까요”, “밤에 잠을 자요? 어림도 없어요. 자다 낙상사고라도 나면 난리가 나요”, 간병노동자 이00씨는 흥분한 나머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앞에서 입에 담기 민망한 이야기를 한다. “밤에 갑자기 일어나서 옷을 홀딱 벗고는 그것을 빳빳이 세우고 이리 와봐, 한 번 하자니까 하자니까, 이래도 참아야 되요. 달래고 얼러서 잠을 재워야 되요. 그런데 야간이 휴식시간이라고요?”

사람의 생명을 보살피는 일에 귀천이 있을까마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장님들에게는 귀함과 천함이 용케도 보이는 모양이다. 청주시노인병원은 의사와 간호사와 간병사들 중에 60명 되는 간병사의 업무만 골라 일반 사기업체에 재위탁을 줘버렸다. 재위탁을 받은 업체는 이들을 1년짜리 근로계약서에다 서명을 하도록 하였다. 간병노동자들은 졸지에 병원의 정직원도 아닌 파견직에다 계약직이라는 이중의 비정규직이 된 것이다.

영동군노인병원도 뒤질세라 간병사들을 개인사업자로 만들어버렸다. 한국간병협회라는 실체도 불분명한 단체를 앞세워서는 간병사들은 병원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고 이 협회의 회원인 개인사업자라는 것이었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장·야간근로수당, 연차수당, 퇴직금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은 병원이 다 시킨다.

청주시노인병원과 영동군노인병원의 간병노동자들은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휴식시간이 없이 격일로 24시간을 근무하는데 그 대가를 법이 정한대로 지급받자는 것이었다. 또 사람대접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병원 모두 사단이 나기로도 왜 이리 판박이일까.

노동조합 가입 사실이 알려지자 청주시노인병원과 영동군노인병원 모두 조합원 중 일부가 근무하는 병실을 비워버렸다. 한 쪽은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한 쪽은 느닷없이 옴이 발생했다는 이유이었다. 병실을 비우고는 그 병실에서 근무하는 조합원을 다른 병실로 옮기거나 이 병실 저 병실 뺑뺑이를 돌렸다. 당연히 조합원들은 스트레스와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그리고,

2011년 7월부터 청주시노인병원에 근무하는 조합원 임수자, 권옥자, 이선애, 강옥이 씨가 차례로 잘려나갔다. 1년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이유다. 그 전에는 단 한 번도 근로계약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퇴직한 사람이 없었다. 조합원들이 잘려나가는 동안에도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과 노동조합을 탈퇴한 사람들은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여전히 계속 근무하였다.

영동군노인병원은 조합원들에게 “우리는 간병협회하고 약정을 했지 당신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병원에서 나가라고 하면 아무 때나 나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조합원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자 병원은 2011년 7월 26일자로 한국간병협회와 약정이 해지되었다는 이유로 조합원 전부를 내보냈다. 20명의 간병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청주시노인병원은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조합원들만 내보내면서 다른 간병사들을 고용하였는데 전혀 경험이 없고 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영동군노인병원은 한꺼번에 조합원들을 내보내니 인력이 모자라서 중국교포들을 간병사로 고용했다. 낙상사고, 골절사고 등등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은 영동군노인병원의 간병사들이 겉으로는 개인사업자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 병원으로부터 직접 고용되어 근무하는 병원 소속 노동자라고 판정을 내렸다.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면 불법이므로 병원은 해고시킨 간병사들을 복직시켜야 한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다.

충북지방노동위원회는 청주시노인병원의 간병사들을 계약만료로 내보낸 것은 노동조합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차별한 것이므로 법이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이곳 역시 요지부동이다.

2011년 9월 29일, 청주시노인병원에서 해고된 간병노동자들은 청주시청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병원 운영의 주체인 시가 책임지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다. 영동군노인병원에서 해고된 간병노동자들 역시 여전히 군과 병원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청주와 영동의 간병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우리는 싸워서 반드시 복직할거예요. 우리가 잘못한 게 없잖아요.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다음에 일하는 후배들도 사람대접을 받지 않겠어요?”

 

 

등록일 : 2011년 10월 7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