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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칼럼] 콩깍지가 되어 형제들을 태우는 자

 

 

콩깍지가 되어 형제들을 태우는 자

 
1.

삼국지에서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위왕 조조가 죽고 왕 자리를 계승한 조비가 라이벌이었던 아우 조식을 불러 말한다.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형제를 주제로 시 한수를 짓되 절대 ‘형제’라는 말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만약 시를 지어내지 못하면 너를 죽일 것이다.” 지금은 이백과 두보 이전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조식, 일곱 걸음을 떼며 시 한수를 바친다.

煮豆然豆其(자두연두기) 콩을 볶으려 콩깍지로 불을 지폈네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은 가마솥 안에서 뜨거워 우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나온 몸이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왜 이다지도 급하게 볶아 대는고

2.

공민교통은 청주에 있는 택시회사다. 사업주가 노동자들에게 악랄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전 노조위원장이 해고되고 나서 갖은 산고 끝에 사업주와 결탁했다고 의심을 받는 사람이 새로 노조위원장이 되었다.

신임 노조위원장이 올해 8월 초 쯤 우리 센터로 전화를 걸어 왔다. “신임 위원장입니다. 앞으로 그 쪽과 거래를 할 테니 반대 쪽 사람들 안도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히 ‘거래’라고 했다. “센터는 노동인권단체입니다. 사회 약자를 위해 일하는 곳입니다. 위원장님이 약자들을 위해 일하면 왜 같이 일을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8월 23일 전 노조부위원장 김00씨를 조합원에서 제명했다. 김 씨는 회사가 임금을 체불한 것에 대해 조합원들을 대표해서 가압류 절차를 밟고 있었다.

8월 31일 유효기간이 1년도 넘은 단체협약과, 역시 유효기간이 4개월이 남은 임금협약을 회사와 합의하여 서둘러 변경했다. 그런데 사납금을 인상한 것과 월 급여를 삭감한 것을 포함하여 월 총액 35만 원 정도의 임금을 삭감해버렸다. 하루 15시간 일해서 빠듯하게 150만을 벌어가는 택시노동자들에게 35만 원은 큰 기업체에서 100만 원의 체감온도다.

3.

보다 못해 조합원들이 위원장 탄핵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총회 소집 요구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노동관계법에 따르면 노조위원장은 조합원 3분의 1 이상이 총회를 소집할 것을 요구하면 반드시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

그러자 위원장은 다급하게 대의원회를 열어서 서명을 주도한 노동조합 대의원의 자격을 박탈해버렸다. 사유는 조합원을 선동해서 조합 조직력을 저해했다는 것. 조합원이 뽑아준 대의원의 자격을 조합원이 아닌 대의원회에서 박탈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노조 규약도 변경해서 조합원 3분의 1이 아닌 과반수가 서명날인을 해야 임시총회를 개최하도록 바꾸었고 역시 조합원이 선출한 감사도 대의원회에서 징계할 수 있도록 바꾸어버렸다.(이러한 규정들은 노동관계법의 제약을 넘는 것이라 전혀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회사와 합의하여 정년 62세를 55세로 낮춘 것이다. 친절하게 노사 공동으로 공고문을 붙였다. “민주노총 민주택시 공민교통 노동조합, (주)공민교통”. 정년 초과 대상자가 10명이었는데 그 중 임시총회 소집요구에 서명한 조합원이 5명이었다.

며칠 후에 서명을 주도했다가 대의원 자격을 박탈당한 조합원이 노조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조합원 제명 처분을 당했다.

노조위원장이 임시총회를 소집할 것을 거부하자 조합원들은 관할 기관인 청주시청에 총회 소집권자를 지명해달라는 요청서를 접수했고 현재 계류 중에 있다. 그 와중에 회사는 여러 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4.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르고 있는 노조위원장도 택시 노동자다. 나는 꽤 오랫동안 택시 노동자들을 상담해오면서 그들이 얼마나 고단하고 서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회사에 밉보이면 베겨나기 어려운 이들이 택시 노동자다. 청주에서 하루 15시간 일해도 150만 원 빠듯하게 가져가는 이들이 택시 노동자다. 비정규직보다도 못하다고,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 층이라고 스스로를 낮추어 부르는 사람들이다.

같은 택시 노동자인 공민교통 노조 위원장은 어찌 사업주가 불 지피는 꽁깍지가 되어 제 형제들을 태우는가?

 

 

등록일 :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