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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센터는/일하는사람들의글쓰기모임

말보루 라이트와 잔돈 200원

“현이야 오늘 막창 먹으러 가자.”
친구한테 카톡이 왔다. 친구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미래에셋 근처 골목쪽 막돼먹은 막창으로 오라고 했다. 막돼먹은 막창은 잘 몰랐지만 미레에셋은 어디인지 잘 아는 터라 알겠다고 답했다.
일을 모두 마친 뒤 미레에셋 근처 정류장에 내렸다. 해가 짧아져서 저녁 7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날은 한밤중이었다. 어두컴컴한 골목안의 가로등 불빛은 으스스한 느낌을 더했다. 골목에는 주차된 자동차만 보일뿐 음식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에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전화는 꺼져있고 어떻게 하지.’
친구의 전화는 그 사이 꺼져버렸다. 난 이 골목에서 더 이상 음식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왼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 골목은 더 좁고 음침해서 당장이라도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잔뜩 긴장해서 걷다보니 큰길이 나타났다. 하지만 큰길 좌우를 아무리 살펴도 막돼먹은 막창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냈다.
“저기요.”
“네?!!”
나는 어두운 골목에서 한참 겁을 먹었던터라, 순간 너무 놀랐다. 두 아이는 나에게 황당한 부탁을 했다.
“저희 담배 좀 사다주시면 안되요?”
“뭐하려고요?”
“피우려고요.”
헐. 나는 아이들의 솔직한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질문을 하면서도 당연히 부모님 심부름일 것이라 믿었다. 왜냐면 너무 순진한 얼굴과 목소리로 물었기 때문이다. 설령 진짜 자기가 피운다 해도 솔직히 답변할 줄 몰랐다. 나는 그 순간 너무 당황해서 살것인지, 말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 부탁을 피하고자 말을 꺼냈다.
“그런데 여기는 편의점도 없고... 살 곳이 마땅히 없는데요.”
근처에는 슈퍼도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난 이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겠다 싶어 안도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뒤쪽 허름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철물점에서 팔아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저 작은 철물점에서 팔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거기서 팔 줄이야. 나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알겠어요. 뭘로 사다줘요?”
“말보루라이트요.”
여자아이는 나에게 2,500원을 내밀었다. 나는 철물점으로 걸어갔다. 그 당시 수중에 현금이 없어서 혹시나 담배가 2500원보다 비쌀까봐 걱정됐다.
“아저씨 말보루라이트 얼마예요?”
“2300원”
“네. 그거 하나 주세요.”
“학생은 아니지??”
“그럼요. 저 27살인데요.”
나는 말보루라이트와 거스름돈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제길. 철물점가게 아저씨가 물건을 옮기느라 밖으로 따라나왔다.
‘아, 어쩌지. 이미 쟤들이 여기 왔다가 빠꾸 먹은거 같은데. 아이씨. 내가 쟤들한테 가면 내가 쟤들 사준거 이 아저씨가 알텐데.’
순간 내가 애들한테 담배를 사준 것이 그 아저씨한테 들통날 것 같아 걱정됐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지 못하고 철물점 앞에서 멈칫했다. 그렇다고 다른 길로 돌아가자니, 저 애들이 내가 자기들 담배 들고 튄다고 생각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했다.
‘아씨. 모르겠다.’
주춤하고 서있던 나는 그냥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계속 철물점 아저씨가 신경쓰였다.
“여기요. 몸에 안 좋으니까 조금만 피워요.”
나는 아이들에게 말보루라이트와 200원을 건내고 돌아섰다. 역시나 철물점 아저씨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듯 그 곳을 벗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이들도 주체적인 존재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운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 18세 미만이기 때문에 담배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왠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담배사주는 것을 들킬까봐 걱정됐고 불안했다. 머릿속으로는 청소년을 하나의 주체적 존재로 인정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나보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조금 더 당당했으면 좋겠다. (사실 다음에 학생들이 다가오면 도망갈 것 같다.)

 

글쓴이 : 김현이 (청주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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