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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센터는/일하는사람들의글쓰기모임

두발로 걸어서 갔다가

컥! 컥! 마른기침에 온몸이 들썩여 눈을 뜨니 새벽5시. 명치와 등이 아프고 속이 답답하다. 채한게 이런 건가? 안방의 엄니와 누이를 깨워 손을 따 본다. 토하고 싶은데 토도 안 나온다. 그런데 몸 전체에 웬 식은땀이 이리 흐르는지….


날이 밝으면 내가 총무로 있는 한우리 모임이 야유회를 간다. 지인이 자기 일처럼 알아봐 주어 처음 펜션 예약을 해보았다. 또 우리 회원들도 기대하며 일정을 모두 비웠을 것이란 생각에 야유회를 취소 할 수가 없다. 누우면 등과 명치가 아파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꼬박 밤을 지샌 후 힘을 내서 야유회 장소로 갔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소와 시간이 계약한대로 안돼서 회원들 불만과 반발로 철수 하고 근처 가든 으로 장소를 옮겨서 놀다가 조금 일찍 끝냈다.


“형님 저 병원에 좀 가야되겠어요.”
“어?! 진짜 많이 아픈가 보네. 병원에를 다 가자고 하는걸 보니.”

가까운 의원에 가서 진찰 받았다. 의사선생님은 “놀라실까봐 뭐라고 말씀 드리긴 그렇고 소견서 써 드릴 테니 지금 빨리 택시타고 충대병원 심혈관계 내과로 가보세요. 빨리 가셔야 합니다.”하시며 입에 알약 한 알을 넣어 주신다. 뭐지? 이 상황은. 형님들께 “충대병원으로 가보라는데요.”라고 말씀 드리고 급히 충대병원으로 향했다.

 

막연한 불안감에 긴장이 되어 담배 한대를 꺼내서 입에 무는 순간, ‘이 담배가 마지막으로 피워보는 담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친다.


충대병원에 도착해서 3층 심혈관계 내과를 찾아 갔더니 문이 닫혔다. 아참! 오늘 일요일이지! 응급실을 찾아서 미로 같은 계단과 복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복도가 어둡고 음침하게 보이고 다리는 힘이 풀려간다. 흐느적흐느적 몽롱하게 헤엄치듯 응급실을 찾아 접수를 하고 소견서를 주었다.


그랬더니 미처 환자복으로 갈아입지도 못한 나에게 의사, 간호사들이 떼로 달려든다.
“혈압 있으세요?”, “네.”
“수치가 어떻게 되요?”, “모르는데요.”
“고지혈증 있으세요?”, “모르는데요.”
“당뇨는요?”, “모릅니다.”


그 후로도 몇 개의 질문이 이어졌고. 나의 대답은 계속 ‘모른다.’였다. 지금 다니는 택시회사에 입사한지가 18년이 되었다. 입사때 만든 건강보험증이 깨끗하다. 아파본적이 없어 병원에 가본 적이 없고 매년 하는 건강검진은 그저 형식적인것 같아 안 받은지 4년째다. 내 몸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데 내 몸을 내가 이렇게나 모르는가싶어 엄청 당혹스럽다.


나를 침대에 눕혀놓고 이 팀. 저 팀 모르는 기기들을 들고, 끌고 와서는 내 몸에다 붙이고 체크하느라 분주한 중에, 한 의사가 내 팔을 두드리며 “아저씨! 아저씨! 지금 심장 한쪽이 안 뛰어요!!” ‘뭐냐, 이건, 내가 죽는 건가? 에라이! 속 아파 죽겠는데 죽거나 말거나 속만 안 아팠으면….’하며 수술실로 이동했다.
“이 환자분 급한 환자거든요.”
침대를 밀며 엘리베이터를 양보 받으려는 간호사의 떨리는 목소리에 심장 한쪽이 안 뛰는지는 몰라도 가슴이 뛴다.


수술실 침대에 누워 있자니 천정에 환하게 들어온 등에 눈이 부시고, 서늘하니 춥다. 의사가 내 허벅지를 붙잡고 “마취할거에요.”, “조금 따끔 할거에요.” 하고선 잠시 뒤 혈관 속으로 뭔가를 집어넣고 연신 쑤셔대며 “허~ 왜이리 안 뚫리지?”하면서 힘이 드는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쑤셔대기를 반복 한다. 내 몸은 점점 기운이 빠져 수술실 침대에 몸이 잠기는 듯하다. 쑤셔대는 것을 잠시 멈춘 의사선생님이 “환자분 보통 이정도 하면 90%이상 환자들은 막힌 혈관이 뚫리는데 단단히 막혔나봐요. 한번 더 시도해 보고 안되면 개복 수술 해야되요.”라고 말한다.


‘개복수술?! 가슴을 절개 한다고? 이런 나는 끝인가 보다.’하고 눈을 감는데 무언가가 속에서 명치끝을 콕 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고 마음속 깊은 간절함으로 의사선생님을 응원하기 시작 했다. ‘의사 선생님,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세요!!’‘슉! 슉! 슉!’ “뚫렸다.” 의사선생님의 기쁜 음성에 답답하고 아팠던 내 명치끝 통증이 눈녹듯 사라진다. 휴~


그 뒤로도 두개의 막힌 혈관을 더 뚫으신 의사선생님이 평온한 음성으로 언제부터 아팠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일주일 전에 한번, 그리고 오늘 새벽 5시쯤부터 아팠다고 답했다. 의사선생님은 흘끗 수술실 시계를 보고는 “허~ 많이 아팠을 텐데.  일찍 오셨으면 환자분이나 저나 고생 덜 하잖아요. 막힌 혈관 3개 모두 뚫었어요. 경과를 지켜 봅시다. 고생하셨어요.”하신다.


수술실 밖으로 실려 나오니 초조하게 기다리던 엄니와 누이가 침대 머리맡 양쪽에 서서 “그러니까 술,담배 하지 말고 몸관리를 좀…. 따따따따~”한다.
“두 보호자분! 아, 방금 시술 끝내고 나온 환자한테 그러시면 안돼요. 안정을 취해야되요. 그런 말씀은 천천히 하세요”
두 여인네가 바로 조용해 진다. 이번에도 의사선생님이 날 살렸다. 고마워요 의사 선생님.


중환자실에서 6층 일반병실로 옮긴 후 쏟아지는 잠에 줄곧 잠만 잤더니 밤에는 잠이 안 왔다. 새벽에 유리로 되어있는 긴 복도를 왔다 갔다하며 어두운 창밖을 보는데 불현듯 ‘내가 죽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순간 가슴이 쿵! 하며  등줄을 타고 찌릿 전기가 흐른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그 가족 못지않은  주변의 친구와 동지들을 더는 못볼뻔 했다는 생각과 내가 저지르고 벌려 놓은 것만 있지 어느 것 하나 마무리 한것 없는데 죽었더라면…. 살아 있기에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확! 겁이 난 것이다. ‘그래. 얼른 건강 되찾아서 언제 죽더라도 웃으며 죽을 수 있도록 내가 저지르고 벌려놓은 것은 마무리 해 놓자!’ 다짐해본다.


그 후 상태는 다행히 호전되었고, 중환자실에 투쟁 쪼끼를 입고 씩씩하게 문병오신 충대병원 동지들을 필두로 입원생활 내내 마주한 담당 의료진과 선후배, 친지, 동지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은 내용들을 퇴원하는 날. 마지막으로 담당 의사선생님께서 정리 해 주신다.

 

“담배, 술 끊어라. 삼겹살, 닭 껍질 먹지마라. 짜게 먹지마라. 페스트 음식과 튀김등 기름기 있는 것은 먹지마라. 커피도 정 마시고 싶으면 블랙으로 마셔라. 그리고 정말 중요한데, 하루 30~40분 걷기라도 운동을 꼭 하고 스트레스 받지 마라.”
그러니까 앞으로는 초원을 뛰댕기며 풀을 먹고 물가에서 나는 어패류만 먹으라는 마흔 여덟해를 이어온 내가 좋아 하는 식습관과 생활패턴을 하루 아침에 싹~ 다 바꿔야 된다는 말씀인데…. 스트레스를 받지마라?!ㅠㅠ

퇴원 수속을 마치고 두발로 걸어서 들어 갔다가 죽어서 나올뻔한 병원을 뒤로 하고, 며칠 만에 돌아온 집은 포근하기만 하다. 책상위의 군대 간 두 아들 사진에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활짝 열고 앉으니 바람이 시원하고 뒷동산은 눈물 나게 푸르르다.

 
두 번 사는 삶인데 어떻게 해야 마무리를 잘해서 죽을 때 웃으며 죽을 수 있을까? 그러기위해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까? 자연스레 깊은 생각에 잠겨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주 곰곰이…. 흠 라이터가 어디 있더라?ㅎㅎ  <끝>

 

 

글쓴이 : 김기현 (공민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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