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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센터는/일하는사람들의글쓰기모임

열명의 남자들

올해 초 회사 내에 특별한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모임이 여러개 있지만 이번 모임은 그 성격이나 내용 그리고 멤버들까지 기존의 모임과는 전혀 다른 그런 새로운 모임이었다.


나와 친한 동료 3명이서 회사 이야기를 하던 중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 이야기하다가 “이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하나 해보면 어떨까?”하는 한마디에 모임을 만들기 위한 밑 작업이 시작됐다.


다음날부터 이름이 거론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이도 20대에서 40대까지 있고, 일하는 부서도 다 다르고, 고향도 출신학교도 모두 달랐다. 그렇게 멤버가 구성되었다.


멤버가 정해지고 우리는 모임의 이름을 ‘큰 울타리’라는 뜻의 ‘한울회’로 지었다. 서로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보자는 의미에서다.


한울회는 회장도 없고 총무도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는데 그때마다 한명씩 돌아가며 총무역할을 한다. 막내부터 제일 형까지 돌아가며 총무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임 날짜도 무엇을 하는지도 정해진 것이 없다.


 그 달에 총무를 맡은 사람 마음대로 모임 일정을 정한다. 단, 밴드에 공지는 미리 한다. 그동안 풋살도 하고, 볼링도 치고, 당구도 치고 여러 가지 특별한 음식을 먹고 했지만 이번 6월달 모임은 좀 특별한 행사를 치렀다. 모임 인원 열 명이서 대낮에 영화를 보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모임 막내의 건의로 이뤄졌다. 일요일 오후에 20~40대 아저씨들 열 명이 모여서 영화라…. 운동을 좋아해서 덩치도 좋고 얼굴도 시커먼 아저씨 10명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고 우리는 아랑곳 않고 극장안으로 들어갔다.


영화 시작 전 막내 둘이서 가방을 주섬주섬 뒤적였다. 뭔가하고 보니 캔맥주 10개와 빨대 10개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열명이 다같이 캔을 따고 빨대를 꽂고 인증샷을 찍는다고 플래쉬를 터트렸다. 영화 시작 전이긴 했지만 극장 안 뒤편에 있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때까지 우리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주위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건 아니니까 걱정들 마시라~


고등학창시절 이후로 2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남자들끼리 영화감상은 옛 추억을 떠올리기에도 충분했고 새로운 활력과 재미를 안겨다주었다.
“남자들끼리 영화 보는 것도 괜찮죠?”
“오! 좋다. 좋아.”
“애인하고 오는 것보다 훨씬 좋은데?”
“태어나서 처음 극장에서 맥주 마셔 봤다. 이 맛이 최고네.”
“다음엔 19금 야한 영화를 같이 보는건 어때? 하하하.”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다들 한마디씩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삼겹살 골목에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2차로 맥주를 마시면서 다음 모임은 수상스포츠를 하자는 둥, 번지점프를 하자는 둥, 여러 의견이 나왔다. 무엇이 됐든 벌써 또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
모임은 일요일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이야기가 계속되다보니 자연스레 회사 이야기가 나오고 노동조합 이야기도 나왔다. 현장에서의 문제점도 많이 이야기되었다.


모임에서 제일 형이고 노동조합 경험도 제일 많은 내가 동생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했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지 현장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등의 토론을 계속했다.


이 모임이 특별한 이유 중의 또 하나가 바로 이런 거다. 그냥 놀고 먹고 마시면서 끝나는 게 아니고 우리의 현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등의 현안 문제를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그런 모임이라서 특별한 것이다.


앞으로 한울회 열명의 남자들이 기대 된다.  <끝>

 

글쓴이 : 염기유 (LG화학에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