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1. 10:01ㆍ노동&이슈/기사&칼럼
보라, 김밥!
5월 20일 화요일 아침. 전남주조장 앞에서 처참하게 찢긴 시체 한 구가 발견되자 시민들은 흥분하여 대인시장 앞에서 시위를 시작하였다. 오전부터 대인시장 아주머니들이 시위대에 나누어줄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고 수천 매의 유인물이 나돌았다. 시민들은 각자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보았던 시민들의 표정, 공포와 절망, 경악과 분노로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던 그 표정과는 분명 어딘가 달랐다. 지금 시민들의 얼굴엔 힘이 넘치고 있었다. 불덩이처럼 뜨겁고 강렬하면서도 엄청난 폭발력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 어떤 힘. 그것이 무엇일까. 그 힘은 어디서 온 것인가. 무엇이 하룻밤 사이에 이 수많은 시민들을 전혀 달라 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수수께끼만 같았다.”(소설 ‘봄날 3권’중에서)
화염방사기도 소용이 없고
오후에는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서방삼거리에서 공수부대가 화염방사기를 쏘았다. 여러 명이 그 자리에서 타죽었다. 시민들은 적대감에 사로잡혔다. 오후 3시를 전후로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이 시내에 배치되었다. 시민들과 공수부대는 총력전에 돌입했다. 대규모의 시위대가 출현하자 공수부대는 바둑판식 점령을 포기하고 중요한 거점만 대대 단위로 지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내에 많은 해방구들이 생겼다. 시위양상이 달라졌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식의 협력체제가 가동된 것이다. 청년들은 각목 등의 무기를 들고 앞에 섰고, 여자들을 최루탄에 견딜 수 있도록 물수건과 치약을 날랐고 물도 떠다 주었다. 어떤 이들은 각목이나 파이프를 구해왔고, 자전거나 리어카로 자갈을 실어 날랐다. 시민들은 이제 외롭지 않았다.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결사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공수부대가 몰려와 난타했지만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스크럼을 짰다.
트럭과 버스, 택시까지 나와서 아리랑 아라리요
날이 어둑해질 무렵, 유동삼거리 쪽에서 수많은 차량의 불빛이 밀려들었다. 기사들의 차량시위였다. 대형트럭과 버스 등을 앞세우고 수백 대의 택시들이 뒤를 따랐다.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면서 도청 쪽으로 왔다. 만세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겁을 먹은 공수부대는 공중전화 박스, 대형화분 등을 부숴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이후 최루탄이 날아들고 공수부대의 돌격으로 공방이 벌어졌다. 많은 기사들과 시민들이 부상당하고 잡혀갔다. 그러나 시민들은 단단히 하나로 뭉쳐 있었고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거세졌다. 김밥, 주먹밥, 음료수, 수건, 담배 등이 시위대에 건네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 외곽에서 몰려 왔다. 학생과 시민들이 한데 어울려 아리랑을 불렀다. 모두가 감격스러워 했다. 아리랑 가락은 신비스럽게도 시민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이 날 시민들의 울음과 눈물은 이웃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당장 목숨을 걸고 구하러 달려가지 못한 양심의 가책과 수치의 처절한 고백이며 너그러운 용서였다.
누구나 한 마음, 한 몸
황금동 술집 아가씨들이나 대인동 사창가 여인들처럼 생각지도 못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동체에 합류하는 모습에서도 시민들은 환희를 느꼈다. 어두워질 무렵 하얀 한복 차림의 농민들 50여 명이 쇠스랑, 괭이, 죽창을 들고 마치 동학군들처럼 금남로에 출현했다. 시민들은 환호하며 죽기로 싸웠다. 또 자기가 갖고 있는 무엇이라도 동료들을 위해 희사했다. 공통으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모금을 벌였고 그때마다 삽시간에 놀랄 만한 액수가 모였다. 음식, 담배 등은 물론이고 무기가 될 만한 연장, 심지어 자동차까지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동원되었다. 피가 모자라자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실로 이곳에는 사유재산도, 생명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다. 계급도 없었다. 혼자 나왔어도 거기서 외로움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 시민들은 죽마고우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도왔다. 수만 명에 달했던 시위대는 밤을 지새우며 싸웠다.
우리가 곧 국가다
저녁이 되자 많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저마다 태극기를 흔들었으며 애국가를 불렀다. 그런 행동은 살인군대를 파견한 신군부는 타도의 대상이고, 자신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국가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엄숙한 몸짓이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저항을 거룩한 싸움으로 결론내고 있었다. 공수부대와의 싸움은 곧 애국이었고 그래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국가의 권위를 행사하게 되었다. 시민들은 절대공동체를 정당한 국가권력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했다. 그래서 전투에 필요한 인원과 물품들을 강제로 징발했을 때 기꺼이 수락했다.
사람의 물결, 사람의 숲
5월 21일 수요일. 아침부터 시 외곽에서 금남로로 끝도 없이 모여드는 군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위대는 트럭, 버스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시민들을 수송했다. 아주머니들이 김밥, 주먹밥, 음료수 등을 수고한다며 올려주었다. 시위대는 전 시민의 뜨거운 성원에 결의를 다졌다. 오전 10시를 전후하여 금남로 시위대는 공수부대의 철수를 위해 협상을 벌이며 긴장 속에 대치했고, 시 외곽은 벌써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석가탄신일이던 이날 시위대는 30만에 육박해서 금남로를 꽉 채우고 도청을 포위해 버렸다. 한 도시 인구 전체가 거의 빠짐없이 시위에 참가한 셈인데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고마우신 회원님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긴 글이었는데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언제 적 무슨 이야긴지 금방 알아채셨을 겁니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총과 총탄을 마련한 군대가 시민들에게 방아쇠를 당기던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국가권력의 폭력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투쟁(鬪爭)정신, 가진 것을 다 내놓고 한 마음 한 몸이 되었던 대동(大同)정신은 인류 역사 그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죽을 줄 알면서 도청을 지키다가 새벽이슬처럼 사라져간 분들의 희생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오늘날 한국은 가까스로 민주화의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청주노동인권센터 역시 빛고을 광주(光州)의 저 빛나는 정신과 유산을 나누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억울한 노동자들의 형편을 돌보기 위해 그야말로 악전고투하시는(투쟁정신) 우리 노무사님 두 분과 사무국의 두 분을 보더라도 그렇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서로 돕고 나누시는(대동정신) 여러 회원님들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맙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면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돕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픈 사람의 처지는 아픈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5년간 청주노동인권센터의 살림살이도 그랬습니다. 그런 줄 알기에 우리 후원회원님들께 더욱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즘 안녕하십니까? 많이 힘드실 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남의 덕을 보며 호의호식하는 즐거움보다 남에게 덕을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기쁜 일인지 말입니다. 이 마음 변치 말고 오래오래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비비추는 지고 옥잠화는 핍니다.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내리고 있습니다. 내내 평안하시기를!
글쓴이 : 김인국 신부 (청주노동인권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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