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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센터는/센터가 만난 사람

나눔의 재생산

<함께사는우리>라는 마을공동체 단체에서 일하는 박만순 님을 만났습니다.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자영업자로, 다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활동과 마을공동체 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온 분이셨습니다. 수많은 남성 사이에서 일하는 저와는 달리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박만순 님은 아재 개그(말장난)의 달인이셨습니다. 만날때마다 유쾌한 박만순 님. 어떤 일을 하는지 한번 만나봅시다~



# 함께사는우리는 어떤 단체인지?

청주 성화동에서 마을공동체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우리 단체가 있는 성화휴먼시아아파트 8개동 중 4개동이 30년 장기 국민임대아파트이다보니 아무래도 저소득 가정이 많이 모여 사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지역아동센터와 작은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또 주민들 대상으로 교육문화 복지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마을공동체는 무엇인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아이들 보육에서부터 어르신 복지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욕구는 많습니다. 우리 단체가 이 모든 부분을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민센터, 복지관과 같은 관련된 각 기관들이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단체는 그 중 교육문화 부분에 있어서 주민들의 교육문화적 욕구를 주민들이 재능기부 강사로 참여해 주체가 되고, 다른 주민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까 도서관에서 뜨개질 하는 분들을 보셨을텐데 주민 중에서 뜨개질 잘 하는 분이 재능기부를 해서 무료로 가르쳐주고 있는 거였어요. 이 외에도 재봉틀, 홈패션, 학습멘토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주민들이 재능기부를 합니다. 저는 이런 봉사나 재능기부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재능기부를 하는 봉사, 재능기부의 재생산이 되는 마을, 그 안에서 서로 교류가 일어나는 마을이 되면 자연스럽게 농촌 공동체와 같은 공동체가 현대사회에서도 가능해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주민들이 서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계획하는 활동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현관 입구 왼편에 비어있는 공간에서 원래는 어르신들 한글학교를 운영했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분들은 계속 있지만 돈벌이를 하러나가는 분들이 많아지고, 스마트폰 같은게  글을 몰라도 모양을 보고 짐작으로 다 하시기 때문에 한글학교에 대한 수요가 많이 줄었지요. 그에 반해 신혼부부 가정이 육아 비용에 부담을 많이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최근 한글학교 운영을 멈추고 그 공간에 영유아 아동에게 장난감을 무료로 대여하는 활동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싼 장난감은 몇 만원씩 하고, 금방 싫증을 내기 때문에 가정에서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거든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서원구를 대상으로 회원가입비 소액을 받고 무상으로 대여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일하며 느끼는 보람, 성과와 힘든 부분은?

매년 마을 축제를 성화동 장전공원에서 꾸준히 해왔습니다. 많이 모이면 1,000명도 모일만큼 큰 규모의 행사였지요. 그런데 사람이 많이 모이면 과시할 수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일방적으로 퍼주는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외부에서 지원을 1000만원 정도 받아서 경품, 체험부스 등을 운영하며 퍼주었지요. 참여한 분들도 즐겁게 놀고 돌아가면 끝이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봉사를 하는 등의 참여로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2-3년 전부터는 우리단체가 있는 5단지 안에서만 축제를 하자고 결정하고, 작은 규모로 축제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어린이집에서 공연도 참여하고, 재능기부로 체험부스도 운영되고, 관리사무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잡아서 주민들도 관심이 많고, 봉사자로도 참여합니다. 인근 상가, 어린이 집, 학원에 권유하면 경품 같은 것도 내주고요. 주민들의 참여로 십시일반 모아서 축제를 만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작년부터는 축제와 비슷한 맥락으로 외부 지원사업도 일체 받지 않고 있습니다. 후원회비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원사업이라는게 돈 준 기관의 입맛에 맞아야 하고, 보여주고 부풀리기 식 사업이 되어버리는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외부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덕에 자유롭게 일하고 있습니다. 대신 외부지원을 받지 않으니 재정적으로는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후원회원을 열심히 모집히고 있습니다.


# 본인은 이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사실 제가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하하하). 지금은 저를 포함해서 사무실 2명, 도서관 봉사자 2명이 일하고 있거든요. 다른 분들이 주민들 재능기부나 동아리 모임 등 거의 대부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크게 마을 축제가 있을때나, 이번에 장난감 대여 사업을 구상해서 진행하는 일 정도를 관여하고 있어요. 그 외에 개인적으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노동운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충북대 경영학과를 다녔었는데 3학년 중반까지 학생운동 하다가 하산했어요(하하하). 그 뒤에는 청주노동자의 집에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일했죠. 6명이 같이 상근했는데, 얼마나 돈이 없었던지 회수권(버스)이 없어서 시계탑에서 청고 사무실까지 다들 걸어 다녔어요. 그 당시 제가 3년 6개월동안 받은 총 임금이 200만원이었으니 말 다했죠. 상근비를 지급하지 못하니 지속가능하지 못했어요. 노동인권센터는 상근자 급여를 지급하니까 올곧게 오래 일할 수 있는데 그때 일했던 분들은 1년 안돼서 다들 그만뒀어요. 그 당시만 해도 신념이 앞섰던 때인데도 도무지 먹고살 수 없으니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저도 결혼하고 애 낳고 나서도 한동안 더 했지만 힘들어서 그만둘 수 밖에 없었어요. 사실 민주노총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하신 분들이 많아서 저는 노동운동 했다고 말하기도 어렵죠. 그래도 애정은 있어요.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충북 노동운동사를 묶거나, 사진집을 내는 일 같은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 앞으로 센터가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주류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노동자 중심으로 가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센터는 더욱 노동자 중에서도 마이너리그, 비정규직, 오갈데 없는 노동자들의 편안한 휴식처, 쉼터 기능을 해야 존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정규직은 계속 확산되고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는데 이걸 포괄할 수 있을만한 곳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노동자들에게 상담이 됐든, 다른 방식이 됐든 지원하는 사업들을 하면 좋겠어요. 

두 번째는 제 개인적 관심사이긴 한데요. 지역의 노동운동사,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한번내고 마는게 아니라, 예를 들어 지역의 AMK, 우진교통, 하이닉스 투쟁을 했던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고, 그때는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런 부분들을 노동자의 삶 속에 가까이 가서 계속해서 기록하면 좋겠어요. 경직된 노동운동사만 몇 권 있는데, 생생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 많아지면 지금의 노동자,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감흥을 느끼고 내가 이렇게 살아야 겠다는 준거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센터에서 하기는 벅찰 수 있지만 한번 해보면 좋겠어요. 어렵게 사는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고, 삶이 따듯하고, 왜 열심히 살고 투쟁해야 하는지를 과거의 활동을 통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정리 / 김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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