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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슈/기사&칼럼

동정과 시혜를 넘어 차별철폐

장애계에서 제일 바쁜 때가 4월이다.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기 때문이다. 각종 행사 등으로 분주한 이 때, 한켠에서 다른 방향으로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4월 20일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고 부른다. 5월 1일을 두고 어떤 이는 근로자의 날이라 하고, 다른 이는 노동절이라고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은 노동절처럼 긴 역사와 세계적인 범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십여년전 ‘동정과 시혜를 넘어 차별철폐’라는 구호를 화두로 삼아 마른 섶에 불 번지듯 일어난 장애인권운동에서 시작된 날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휠체어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버스를 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중증의 장애인들은 위험천만한 지하철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2001년, 2002년 연달아 사망사고가 일어났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단식 농성을 하고 의회에 기습시위를 벌이다가 어느 날은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고 어느 날은 버스를 타겠다고 도로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의 몸과 휠체어에 지하철 선로에 쇠사슬을 감고 있었다.


대학에 다니고 있던 나와 주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들이 한 달에 평균 너댓번만 외출할 수 있고, 평균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정도. 통상 인구의 10%가 장애인이라지만 살면서 장애인을 몇 번 만나보지도 못했다. 대체 장애인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교육열이 지나칠만큼 높은 우리 사회에서 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지 같은 시기에 같은 나라에 함께 살고 있지만 알 수 없었던 다른 세계가 있었다.


장애인권운동이 일궈온 10년간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이동권, 학습권처럼 비장애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누려온 이동의 권리, 교육받을 권리가 법이라는 제도로 보장되기 시작했고,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만들어졌다. 몇 명의 국회의원이나 전문가가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이 싸우며 만들 법이기에 실제적인 변화가 함께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정과 시혜의 시선은 여전하다. 장애인은 아픈 사람, 부족한 사람이니까 불쌍하고 가엾다는 것이 아직 사회적 통념이다.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이나 연말 즈음에는 장애를 극복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장애인이나 그저 순수하기만 한 천사 같은 장애인, 아니면 유독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이 TV에 나온다. 보는 이의 눈가가 시큰하도록 감성을 자극하다가 그 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고 만다.

 

장애인은 천사도 아니고, 모든 장애인이 특별한 재능이나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장애인들이 선한 사람부터 악한 사람까지 뛰어난 사람부터 그렇지 못한 사람까지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들도 그렇다.


이제 휠체어가 길에 돌아다니거나 하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살기에는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장애인을 한명 한명이 각기 다른 개성의 개인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와중에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배려는 잊지 않는 균형감각일 것이다.  <끝>

 

글쓴이 : 조연희 (충북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합니다.)